[사물 일기] 채찍: "타격의 소리 뒤에 숨은 자비, 찢긴 살가 위로 피어나는 서늘한 회복"

 채찍: "타격의 소리 뒤에 숨은 자비, 찢긴 살가 위로 피어나는 서늘한 회복"




     01. 쇠붙이와 매듭의 비가: 빌라도 관정의 차가운 돌바닥을                                                     적시는 비천한 실존

     나의 실존은 언제나 타인의 고통을 먹고 자라는 가장 잔혹한 음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가죽을 꼬아 만든 긴 끈 끝에 뼈조각과 둔탁한 쇠붙이를 달아붙인 나의 몸체는, 로마 군병들의 거친 손길에 끌려다니며 오직 타인의 비명과 혈흔만을 기억하는 비천함 그 자체였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화려한 권력의 장신구나 위엄을 자랑하는 칼날만을 귀하게 여길 뿐, 빌라도 관정의 차가운 돌바닥에 납작 엎드려 어둠을 흡수하는 나에게는 두려움 섞인 혐오만을 더할 뿐이었습니다.

      관정 안에는 짓눌린 정적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재판석에 앉은 빌라도의 망설이는 숨소리와, 창밖에서 민중들이 토해내는 광기 어린 고함 소리가 사방의 석조 벽을 때리며 웅성거렸습니다. 

      그 오만한 권력의 계산법 아래에서, 나는 로마 군병의 서슬 퍼런 악력에 쥐어진 채 피비린내 나는 마당 한복판으로 끌려 나갔습니다. 자존심과 정치적 입지를 지키기 위해 무죄한 분을 넘겨주던 빌라도의 차가운 눈빛, 그리고 그 분의 몸에 가해질 파괴를 기대하며 침을 뱉던 군중들의 매캐한 숨결이       내 가죽 끈 끝을 무겁게 짓눌렀습니다.

     세상이 말하는 힘과 정죄의 논리대로라면, 나는 그저 한 인간의 실존을 무자비하게 부수고 찢어발기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붉은 피와 땀방울로 얼룩진 그 마당 구석에서 내가 경험한 것은 단순한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죄악과 거친 하중을 온몸으로 받아내시는 분의 침묵이 어떻게 사나운 타격의 소리를 감싸 안는지, 그 깊은 수용의 신비를 가죽 끈 전체로 감각하는 고요하고도 두려운 대기의 순간이었습니다.

   02. 가죽 매듭 사이에 갇혀 타인의 살점을 찢어발기던 완고한 타격

     내 몸에 새겨진 각 매듭과 쇠붙이는 타인에게 상처를 입히고 자신의 우월함을 증명하려는 인간의 완고한 습관을 닮아 있었습니다. 

     군병의 팔이 공기를 가르며 휘둘러질 때마다, 나는 허공을 찢는 비명을 지르며 그분의 청초한 등허리와 어깨 위로 떨어졌습니다. 

     매일같이 타인을 비난하고, 내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상대의 연약한 부분을 후벼 파며, 내 이기적인 목적을 따라 거칠게 휘둘러지는 것이 이 세상의 참혹한 상황이었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처지에서, 오직 살점 속으로 파고드는 쇠붙이의 마찰음과 가죽 끈 사이에 스며드는 붉은 피의 까슬한 온도로만 세상의 타락을 감각해야 하는 비극적인 시간이 매 순간 되풀이되었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깊은 상처를 내기 위해 힘을 주고, 타인을 짓밟아 자신의 안위를 확인하려는 인간들의 오랜 습관이 가져온 결과는 언제나 가슴 가득 채워지는 눅눅한 자책감과 결코 씻기지 않는 정죄뿐이었습니다.

     그 누구도 이 잔혹한 폭력의 사슬을 스스로 끊어내려 하지 않았습니다. 

     찢겨나가는 살점과 피비린내가 뒤엉킨 채 관정의 바닥이 붉게 물들어가던 그 순간, 나는 인간의 역사가 이대로 무미건조한 정죄와 보복 속에 무너질 것이라 믿었습니다. 

     사방의 문이 단단히 닫힌 것만 같은, 캄캄한 정체의 밤이었습니다.


     03. 찢겨진 살가 위로 흐르는 붉은 자비, 정죄의 장부를 지우는               거룩한 치유

     우리는 더 이상의 회복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시선은 언제나 승리한 자들의 오만한 머리 위에만 머물렀고, 낮아짐과 고통을 거부하는 자들의 완악한 태도는 우리의 가죽 매듭을 더 단단한 무기로 덮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순간, 정적을 깨뜨리는 묵직한 반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채찍이 그분의 살가을 깊게 베어 물 때마다, 그분은 거칠게 저주하거나 보복의 언어를 뱉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그 찢긴 상처 사이로 흘러나오는 붉은 피로 내 가죽 끈의 독기와 쇠붙이의 날카로움을 가만히 적셔주셨습니다. 

     그것은 힘을 쥔 자들의 당당한 반격이 아니었습니다. 진짜 창조주께서 우리의 지독한 죄악과 정죄의 한복판으로 당신의 전 실존을 수직으로 던지신 것입니다.

     그분은 나라는 도구가 만들어내는 지독한 통증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당신의 온몸이 찢어지고 부서지면서도, 내가 가한 모든 상처를 묵묵히 받아내시며 그 피로 세상의 모든 허물과 질고를 대신 짊어지셨습니다. 

     그분의 붉은 샘물이 내 매듭 사이사이에 낀 독소를 씻어내기 시작했을 때, 타인을 향했던 모든 분노와 짜증, 그리고 자책의 무게는 산산이 조각나 흐려졌습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갚는 세상의 계산법으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거룩한 낭비였습니다. 

     그분이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는 선언이 돌마당 전체에 조용히 진동했습니다. 

     그분의 온기가 내 묵직한 가죽 결을 따스하게 감싸 안을 때, 나는 비로소 파괴의 무기가 아닌, 거룩한 치유와 회복을 증언하는 도구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04. 자존심의 겉옷을 벗고 다시 신나서 처음 기분으로 일어서는             삶의 태도

     그분의 찢긴 살가이 남긴 거룩한 피의 온기는 즉각적인 삶의 변화를 유발하는 강력한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내 가죽 매듭에 스며든 붉은 피가 차가운 돌바닥으로 뚝뚝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비로소 낡은 비난과 자책의 울타리를 깨부수고 나아갈 준비를 마쳤습니다. 

     일이 뜻대로 안 풀리거나 치명적인 실수를 하더라도 짜증 내지 않고 신나서 처음 기분으로 다시 하는 마음이야말로 이 피 묻은 바닥에서 깨달은 삶의 지혜입니다.

  • 타인을 향한 비난의 채찍을 거두고 묵묵히 품어주기: 주변 사람이 실수를 하거나 거친 모습을   보일 때, 나 자신의 자존심을 세우기 위한 비판의 채찍을 즉시 내려놓으십시오. 그 상처와 허물 한복판으로 먼저 들어가 소리 없이 감싸 안아주는 따뜻한 위로가 영혼을 본질적으로 살려냅니다.

  • 자책감을 신나는 기분으로 치환하여 새벽의 행군 시작하기: 실패의 경험이나 세상의 정죄 때문에 마음에 눅눅한 짜증과 자책감이 가득 차올를 때, 자존심이라는 무거운 겉옷을 미련 없이 벗어던지십시오. 내 삶이 뜻대로 되지 않아 진흙탕에 빠진 것 같더라도, 원망을 거두고 이 길을 처음 나섰을 때 가슴을 뛰게 했던 그 순수한 심장박동을 기억해 내십시오. 신나서 처음 기분으로 물을 퍼 올리고 다시 걸어 나갈 때, 우리를 억누르던 모든 정체의 밤은 물러가고 새로운 회복의 행군이  시작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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